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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티홀의 딜레마

몬티올의 딜레마를 아는가?
이것은 1960년대의 쇼프로에서 비롯된 것으로,
게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튜디오에 3개의 문이 설치되어 있다.
A,B,C 세개의 문 중 두개의 문 뒤에는 염소가 있고, 하나의 문 뒤에는 자동차가 있다.

참가자는 하나의 문을 고를 수 있다.(열지는 않는다)

당신이 A를 고른다 해두자.

그러면 꽝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고 참가자가 고른 문이 뭔지도 알고 있는 사회자가 한개의 문을 열어준다.(B라 하자.)

물론 사회자가 열어준 문 뒤에는 염소가 있다.

 

자, 이제 문제다.

2개의 문이 남았는데, 당신은 처음 고른 A를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선택을 바꿔 C를 고를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어떤 것이 더 당첨될 확률이 높을까?

 

그냥 생각하면 1/2의 확률로 두 문 모두 똑같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보자.

사회자는 꽝이 어떤 문인지 알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당신이 A를 골랐을때 B뒤에 자동차가 있다면 사회자는 C문을 열 것이다.

C뒤에 자동차가 있다면 사회자는 B문을 열 것이다.

즉 즉 당신이 답을 고수한다면 당신은 세 문 중 A에 자동차가 있을 때만 당첨되는 것이다.

1/2확률이 아니라 1/3의 확률을 갖게 되는 거다.(처음 문제에 직면했을 때보다 나아진 게 없는 상황인 것이다.)

즉 원래 문을 고수한다면 애초에 문을 바꾸지 못하는 상황과 마찬가지가 되니 사회자가 문을 연 것과 상관없이 당신은 세 문중 하나의 문에만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선택을 바꾼다 해 보자.

당신이 처음에 꽝을 골랐다면 당신이 문을 바꿀 경우 당신은 무조건 당첨이 된다.

당신이 자동차가 있는 문을 골랐다면 문을 바꿀 경우 당신은 무조건 꽝이 된다.

알기 쉽게 나타내어 보자.

1.처음에 염소가 있는 문 선택->바꾸면 당첨.

                                      ->그대로 가면 꽝.

2.처음에 염소가 있는 다른 문 선택->바꾸면 당첨.

                                       ->그대로 가면 꽝.

3.처음에 자동차가 있는 문 선택->바꾸면 꽝.

                                       ->그대로 가면 당첨.

당신이 문을 바꾸는 것은 꽝이 될 확률이 2/3에서 1/3으로 됨을 의미한다.

그 말은 곧 당신의 당첨 확률이 2/3이 된다는 말이다.

 

간단하게 정리하자.

바꾸기 전의 문에 자동차가 있을 확률은 1/3이다.

해설자가 연 문에 자동차가 있을 확률은 0%다.

그러므로 문을 바꾼 후에 거기에 자동차가 있을 확률은 2/3이다.

1/3  +  0  +  2/3 = 1 이니까 말이다.

 

참 재미있지 않은가?

직관으로만 문제를 풀면 어느 쪽이나 1/2였던 상황이 논리적으로 문제를 파고들면 1/3과 2/3으로 나뉘어진다는 것이.

그런데 참 더 재미있는 것은, 위의 계산은 하나의 문이 개방된 이후에도 전체 모집단을 3개로 본다는 것이다.
문이 하나 열렸기 때문에 이후의 전체 모집단은 2개로 줄어들게 되고, 이 상황에서는 1/2의 확률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직관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명 또한 되고.

하지만 나는 지금, 몬티홀이 옳다고 생각하고 싶다.
제발 내가 이 상황에서 답을 바꾸게 된다면, 정답을 맞출 수 있는 상황이길.

 

 

by 라이언 | 2008/04/22 08:38 | 트랙백 | 덧글(1)

Conflict

어떤 집단을 바라보아도, 하나의 집단 안에서 갈등이 없을 수가 없다.
집단 내부에서의 집단이 생기는 경우는 허다하며, 결국 그들을 포괄하는
거대한 집단을 좀먹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고등학교를 다닐때는, 그런 개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그런 상황에 대해서 전혀 보아온 적이 없었으니까.

고등학교 때, 기억나는 내부적 갈등은 선생들 간의 대립이었다.

실명을 거론하기는 좀 뭣하지만, 쇳대라고 불리었던 선생이 있었다.
국사 및 역사 담당 선생이었는데,
자신이 문제의 쇳대(경상도 말, 혹은 한국 고어로 열쇠)를 명쾌하게 알려주겠다는 의미로
자신이 쇳대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기 때문에 별명이 쇳대였다.

그는, 선생들 사이에서 왕따 비슷한 존재였는데, 그것이 쇳대란 인물이 아주 올곧고 똑바른 사람이라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당했기 떄문은 절대! 절대! 아니었고, 오히려 정 반대였다.
선생답지 않게 아주 명예로운 것을 좋아하였고, 자신의 편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그는 내가 고 1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MRA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나는 멋도 모르고 MRA에 가입하여
당시에 단장이 되었다. 국사과목이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과목이기도 하고,(당연히 서울대 필수니까)
선생들에게 귀여움을 받으면 떨어지는 콩고물이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MRA에 망설임 없이 가입했었다.

하지만 MRA의 주 활동은, 쇳대 사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었다.
 시에 고 2였던 나는 실질적인 단장이었지만,
활동도 전혀하지 않고 얼굴도 몰랐던 쇳대의 같은 학교 3학년 아들이 명목상 단장으로 취임해 있었으며,
그 아들의 대학 진학을 위해 동아리 점수를 따주기 위해 동아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TV촬영시에 (내 기억에는 6시 네트워크였던 것 같다) MRA부원들을 함부로 차출해
그의 TV촬영 들러리를 세우기도 했었다. (물론 나도 그 중 일부였다.)
당시가 시험기간이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뭐 학생들의 시험보다는 자신의 TV촬영이 더 우선시되는 선생의 의식이나 행동테제는 불보듯 뻔한것이었다.

물론 이런 내용들이 갈등의 주된 내용은 아니었고,
그 만큼 부패한 선생이라 선생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고,
갈등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일례들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고2 기말고사를 치기 직전에 일어났는데,
당시에 문과에서 물리시험을 준비하던 우리들은,
물리 선생님이셨던 이승형 선생님의 배려로
20문제중 12문제를 답을 안 상태로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 답은 아주 인상적이어서, 지금까지도 잊어버릴수가 없다.12개의 답은 442442343242였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일이 꼬이게 될 줄이야.
평소 이승형 선생님과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던 쇳대는,
반에서 이승형 선생님이 뽑아준 12문제를 풀고 있던 나에게서
그 프린터를 뺏아가 교무실 및 언론에 알리기에 이르렀다.
일파만파로 커져서, 경남일보에서 그 사건을 취재해가기도 했고,
그 사건으로 나는 물리점수를 잘받기 위해서
선생에게 물리 시험지를 넘겨버린 아주 못된놈으로 오해를 받았다.
(이렇게까지 사건이 흘렀는데, 내가 물리 시험 답을 잊어버릴 리가 없다.
아마 아주 오랜시간동안 나는 저 물리정답을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이승형 선생님을 찾아가 이 사건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을 드렸고,
이승형 선생님은 나의 잘못에 대해서는
일체 나무라지 않으셨고, 오히려 물리시험에 집중하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런데, 3일 후 나는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쇳대와 이승형 선생님이 치고박고 싸운것이다.

무슨 우스개소리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들간의 무력다툼도 아니고,
선생들간의 무력다툼이 일어나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 사건으로 이승형 선생님은 전산부장의 자리에서 물러나 전산실의 한적한 자리로
내몰리셧고, 쇳대 또한 학생부라는 저 한적한 자리로 밀려나고 말았다.

물론 그 일이 있은 이후, 나는 쇳대에 대해 엄청난 반감을 가지고 일탈행동을 시작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고3동안 국사시간에는 거의 모든 아이들이 태업 혹은 파업을 했고,
나는 교실 뒤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대자로 누워있었다.
지금와서는 정말 철없는 짓이었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일종의 반항이자 '못된 어른'에 대한 응징이었다.

이렇게 되니, 국사 선택자는 서울대 지망생 몇으로 줄어들고,
대부분이 근 현대사를 공부하기에 이르렀고,
국사 공부는 나와 친구들 몇이서 스스로 모여서 공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의 내용이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지켜본 유일한 집단 내부의 갈등이었다.
고등학교라는 집단 자체가 공동체를 아주 우선시하기 떄문인지는 몰라도,
학생들간의 대립은 찾아보기 꽤 힘들었다.
(물론 사이 나쁜 관계는 있지만 이런것이 알력다툼으로
'쟤랑 놀지마'와 같은 왕따 케이스와는 연결되지 않았다.)
사이가 안좋아도 어울려 노는 경우가 대다수였기에.

하지만 여기. 관악산 아래는 어떤가.
나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아직 관악에 몸담은 시간이야 고작 1년 남짓이고,
만난 사람들이야 손에 꼽을 정도이기 떄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과 같이 하나의 융합된 (좋든 싫든) 공동체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선생들간의 관계와 같이 이것저것의 파벌이 형성되어있는 양상은 쉽게 지켜볼 수가 있다. 

어느것이 무조건 좋다고는 판단할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고등학교 시절의 공동체는
전체주의적인 사상으로 지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나 하지만.
나는 왜 요즘 고등학교 시절이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
단지, 대학에서 만끽할 로망을 그리며 순수하게 생활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by 라이언 | 2008/04/13 17:35 | 트랙백 | 덧글(0)

시작.

개소리의 시작.
어떤 사람들은 이제 골치가 아프겠지. ㅋ

by 라이언 | 2008/04/10 12:52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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